📑 목차
영주 무섬마을은 물 위의 길이 이어주는 고요한 세상의 일부다. 외나무다리를 건너며 조용한 강가의 삶을 마주하고, 전통 한옥과 사람의 온기가 살아 숨 쉬는 무섬마을의 하루를 따라간다.
영주 무섬마을에서의 하루: 물 위의 길을 따라 걷다
경북 영주의 동쪽 끝, 내성천이 휘감아 흐르는 곳에 무섬마을이 있다. 이름처럼 ‘물 위의 섬’에 자리 잡은 이 마을은 강물과 함께 살아온 세월을 품고 있다. 자동차가 사라지고, 콘크리트 대신 흙길이 시작되는 순간 공기가 달라진다. 바람에는 강 냄새가 섞여 있고, 발밑에는 시간의 결이 느껴진다. 무섬마을은 수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전통마을로, 지금도 40여 채의 고택이 남아 있다. 나는 이곳을 찾으며 ‘고요한 하루’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 배웠다. 이 마을의 하루는 바쁘지 않다. 대신 깊다.


강이 품은 마을, 시간의 경계를 걷다
무섬마을의 아침은 강물의 속도처럼 느리다. 햇살이 강 위를 부드럽게 비추면, 물결이 마치 유리처럼 반짝인다. 강을 따라 걷다 보면 물 위에 얇게 떠 있는 안개가 마을을 감싸며 피어오른다. 새소리와 바람이 섞여 자연의 리듬을 만든다. 나는 외나무다리를 바라보며 걸음을 멈췄다. 폭 20cm 남짓한 나무판으로 만들어진 이 다리는 마을과 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다. 발을 올리는 순간, 마치 물 위를 걷는 듯한 착각이 든다. 강 아래로 비치는 햇빛과 그림자가 흔들리며 내 몸까지 흔들었다. 긴장과 설렘이 동시에 느껴졌다. 무섬마을의 다리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, 시간과 현재를 잇는 다리였다.
무섬마을의 사람들, 물과 함께 사는 삶
이 마을 사람들의 하루는 강물의 흐름을 닮았다. 아침이면 할머니들이 강가에서 빨래를 하고, 아이들은 흙길을 따라 뛰어간다. 장독대 위에는 햇살이 내려앉고, 먼 산에는 안개가 걸린다. 나는 마을 어귀의 고택에서 마주한 한 노인을 기억한다. 그는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다고 했다. “우린 늘 물 옆에서 살아왔지요. 비가 오면 강이 불고, 가물면 강이 말라요. 그래도 이 물이 없으면 못 살아요.” 그의 목소리에는 고요함과 단단함이 함께 있었다. 무섬마을 사람들에게 물은 생명의 근원이었다. 매일의 삶이 강을 기준으로 흘러가고, 계절마다 색이 달라진다. 여름에는 초록빛이 짙고, 겨울에는 얼음이 마을을 감싼다.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같은 리듬으로 산다.
외나무다리, 무섬마을의 상징
무섬마을을 찾는 대부분의 사람은 외나무다리를 보러 온다. 나 또한 그랬다. 그러나 실제로 그 다리를 건너보면 단순한 명소 이상의 의미가 있다. 나무판 위로 발을 옮길 때마다 미세한 흔들림이 몸에 전해진다. 처음에는 불안하지만, 몇 걸음 지나면 묘한 평온이 찾아온다. 마치 내가 강과 한몸이 된 듯한 기분이다. 이 외나무다리는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사람의 발자국을 품어왔다. 결혼식 날 신부 행렬이 건넜고, 장마철에는 가족들이 짐을 이고 건넜다. 다리는 그 모든 순간을 기억한다. 바람이 불면 나무가 삐걱거리며 말한다. “아직 여기에 있다.” 그 소리는 마을의 역사이자, 사람들의 기억이었다.
고택이 전하는 시간의 향기
무섬마을의 가장 큰 매력은 고택이다. 흙벽과 기와지붕이 어우러진 한옥은 그 자체로 살아 있는 역사다. 마을 중심부에는 100년 넘은 종가가 있고, 골목마다 작은 초가집이 이어진다. 나는 한 고택의 대청마루에 앉았다. 마루 아래로 바람이 스며들고, 장독대에서 나는 된장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. 주인은 내게 따뜻한 숭늉 한 잔을 내주며 말했다. “이 마을은 천천히 살아야 보입니다.” 그 말이 마음에 남았다. 무섬마을의 고택은 단순히 옛 건물이 아니라, 지금도 사람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었다. 기둥마다 사람의 손길이 묻어 있고, 마당에는 아이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. 이곳에서는 시간조차 숨을 고른다.
무섬마을의 풍경, 물과 하늘이 만나는 자리
무섬마을의 풍경은 하루에도 여러 번 변한다. 아침에는 은빛 안개가 마을을 덮고, 점심에는 햇살이 강 위를 금빛으로 물들인다. 해질녘이 되면 붉은 노을이 강물에 스며들고, 하늘과 물이 하나가 된다. 나는 그 시간의 마을을 가장 좋아한다. 외나무다리 위에서 바라본 석양은 마치 두 개의 세상이 맞닿는 듯했다. 하늘이 강 속으로 흘러 들어가고, 강은 하늘의 빛을 품는다. 사람들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사진을 찍지만, 나는 카메라를 내렸다. 이곳의 아름다움은 기록보다 체험이었다. 물 위의 길을 걷는다는 건 결국, 순간의 감각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다.
무섬마을의 밤, 별빛이 머무는 시간
해가 지면 무섬마을은 완전히 다른 세계로 변한다. 어둠이 내려앉고, 강 위에는 달빛이 길을 만든다. 마을의 불빛은 많지 않다. 대신 별들이 하늘을 가득 채운다. 나는 외나무다리 초입에 앉아 밤공기를 들이마셨다. 바람이 강을 타고 불어오며 머리카락을 흔들었다. 멀리서 개 짖는 소리와 물소리가 섞여 들렸다. 이곳의 밤은 조용하지만, 결코 정적이 아니다. 풀벌레와 강물, 바람이 함께 내는 합창이 마을의 자장가가 된다. 무섬마을의 사람들은 이 소리를 들으며 잠든다. 그 고요한 풍경 속에서 나는 도시에서 잃어버렸던 감각을 되찾았다.
사람이 머물고, 시간이 익는 마을
무섬마을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. 이곳은 ‘살아 있는 문화유산’이다.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전통을 지키며 살아간다. 강가에서는 장 담그는 모습이 보이고, 마당에서는 손으로 지은 짚신이 햇살에 말라간다. 젊은 세대도 돌아오고 있다. 어떤 청년은 고택을 개조해 게스트하우스를 열었고, 또 다른 이는 마을의 사진을 기록하며 무섬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있다. 이곳에서는 전통이 박물관 속에 있지 않다. 사람의 삶 속에서 계속 이어진다. 무섬마을은 지금도 숨 쉬는 현재형 유산이었다.
무섬마을의 고요함이 주는 배움
나는 여행의 마지막 날, 새벽에 다시 외나무다리를 건넜다. 안개가 강 위를 덮고, 물결이 조용히 흔들렸다. 발 아래의 나무는 서늘했고, 발소리는 물속으로 스며들었다. 그 순간 나는 느꼈다. 무섬마을의 고요함은 단순한 정적이 아니라, 살아 있는 시간의 울림이었다.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천천히 흘러가지만, 아무것도 멈춰 있지 않았다. 강이 흐르고, 사람은 살아가고, 세대는 이어진다. 무섬마을은 그런 시간의 순환 속에서 오늘도 물 위의 길을 내고 있었다.
결론 – 물 위의 길에서 배운 느림의 아름다움
무섬마을의 하루는 한 폭의 수묵화 같다. 물과 흙, 바람과 사람이 어우러져 한 장면을 만든다. 외나무다리를 건너며 사람들은 자기 속도로 걷는다. 그 느림이 이 마을의 가장 큰 선물이다. 무섬마을은 단지 오래된 마을이 아니라, ‘현재의 고요’를 품은 공간이다. 나는 여행을 마치며 깨달았다. 진짜 평화는 소리가 사라진 곳이 아니라, 모든 소리가 조화를 이루는 곳에 있다는 걸. 무섬마을의 물 위의 길은 그렇게, 오늘도 조용히 사람들의 마음을 건너고 있다.
'여행' 카테고리의 다른 글
| 순창의 고요함 속으로: 전통과 발효의 마을 이야기 (0) | 2025.11.09 |
|---|---|
| 통영의 골목에서 찾은 바다의 기억 (0) | 2025.11.09 |
| 보성의 초록 시간: 차밭 사이를 걷는 여행 (0) | 2025.11.09 |
| 정선에서 만난 느린 하루: 폐광 마을의 새로운 얼굴 (0) | 2025.11.09 |